미국 최초의 한인유학생회 <The Korean Students' Alliance>의 창립과
최초의 영문 잡지, 한인학생보 <The Korean Students' Review>의 발행.
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된 이후 시작된 한인들의 미국유학의 역사는 벌써 130년이 다 되어간다.
당시 유학생들은 정치적 망명, 혹은 유학, 구국을 위한 목적 등의 다양한 이유로 도미를 하였고, 미국에서의 유학을 시작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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초기 유학생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일제의 침략에 따른 조국의 상황이 열악해지자 북미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한인유학생들은 네브라스카주에서 박용만에 의해 창설된 한인소년병학교 교사와 생도들을 주축으로 1913년 6월 4일 헤이스팅스지역에서 한인유학생회 (The Korean Students' Alliance)를 조직하고 창립하였다.
1913년 당시 미주 한인유학생은 130여명 정도 되었으나, 그 중 60명 정도가 박용만의 영향으로 네브라스카 주변지역으로 밀집하였고, 한인소년병학교 교사였던 박처후를 회장으로 선출하여 유학생들의 결집과 연락, 친목 등을 목적으로 한인최초의 유학생회를 결성한 것이다.
한인유학생회는 1914년 6월 1일, 재미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영문 잡지인 <한인학생보 (The Korean Students' Review)>도 발행하여 조국의 문제를 환기시키고, 일제치하의 고국의 실정과 한국인의 자주독립정신을 홍보하였다.
정식명칭은 <대한인북미유학생영문보>로서 당시 한인신문인 신한민보와 국민보는 이 유학생회의 결성과 회보의 발행을 교민들에게 알렸다.
이를 계기로 미주 각지방에선 유학생회가 활발하게 조직되기 시작하였고, 1921년 4월 각 지방에 산재한 한인유학생회가 하나로 통합, <북미한인유학생총회>가 결성되게 되었다. 그 후 1927년 3월, 유학생대회의 결의로 명칭을 변경하여 <북미대한인유학생회>라고 하였으며 당시 재학생 255명은 모두 유학생회에 참여하여 유학생회 전성시대를 이루었다.